토끼와 옹달샘 이야기
토끼와 옹달샘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오동나무와 딱따구리
옛날 조상님들은 딸아이를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시집가는 딸에게 줄 장롱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하는데, 그렇게 부정(父情)을 듬뿍 담고 있는 큰 오동나무가 이곳에 여섯 그루 있습니다.
그 중, 두 그루는 대문 양 쪽으로 서 있습니다.
다녀가시는 분들은 오동나무가 대문 옆으로 심겨진 모습은 흔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마당에서 보아 왼쪽 나무는 아주 큰데, 꼭대기에 커다란 까치집을 두개씩이나 이고 있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오른쪽 나무는 그보다는 조금 못합니다.
친구 녀석은 오른쪽 나무 옆에 서 있는 버드나무 그늘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몇 번 잘라버리라는 충고가 있었지만,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잎도 정겨워 아직은 그대로 두고 있습니다.
오동나무는 잎이 커서 아주 큰 그늘을 만들지만, 대문 옆에 있는 탓에 충분히 이용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잎이 다 자란 여름이면, 가끔 그늘 아래서 머릿속으로 장롱을 만들어 봅니다.
직원 어르신의 전언에 의하면 수령이 20년은 넘었을 것이라지만 아무리 궁리를 해서 재단을 해도 큰 장롱이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 큰 장롱은 오동 나무판을 여러 장 이어서 만들었을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나에게도 옛날이라면 과년(瓜年)이라는 표현을 쓰고도 남을 나이의 두 딸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오동나무 장롱을 만들어 줄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딸자식을 뒀던 옛날 아버님들의 마음을 읽어 보는 겁니다.
어쩌면 그러면서 내 마음에도 두 딸을 위한 오동나무가 심겨져 있는지 돌이켜 보고 싶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 정겨웠던 오동나무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 왔습니다.
별관 방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마당에서 따다다닥 따다다닥 요란한 소리가 들립니다.
계속되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아 마당으로 나섰지만, 소리의 실체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침 부엌에서 나오시던 직원 어르신이 대문 왼쪽 큰 오동나무를 가리키며, 딱따구리가 앉았다고 알려주십니다.
그래도 녀석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급기야 어르신이 지게 작대기를 들어 정확하게 녀석이 있는 곳을 가리킵니다.
그제야 까만 점무늬 옷에 붉은 모자를 쓴 녀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녀석은 마당에서 들리는 사람 소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연신 뾰죽한 주둥이로 오동나무 둥치를 쪼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딱따구리 소리를 들어는 보았지만 모습을 본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내 눈 앞에 나타난 녀석이 더욱 신기할 뿐입니다.
얼른 방으로 들어가 사진기를 꺼내옵니다.
그러나 녀석의 모습을 크게 잡기가 어렵습니다.
마당 앞이라고 해도 나무가 높아 망원렌즈를 붙이고서야 겨우 선명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인기척에 금방 날아가 버릴 것 같았던 녀석은 며칠 동안을 같은 모습으로 둥지 구멍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딱따구리는 암수가 번갈아 둥지를 만든다고 하지만, 모습이 비슷해서인지 내 눈에는 한 마리로만 보였습니다.)
그 모습에 뭇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둥지 구멍을 넓혀갔습니다.
나는 열심히 응원을 보냈습니다.
10여일이 지나서야 녀석이 참아왔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지만, 그해 여름이 유난히 바빠 이후의 행적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가끔 어미가 먹이를 나르는 모습이 보였지만 매일 지켜 볼 수는 없었습니다.
직원들에게 물어봐도 둥지에서 새끼가 나는 모습을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딱따구리 가족을 연상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자주 보았던 대로 녀석은 둥지에 부드러운 이불을 만들어 알을 낳고 새끼를 부화시켰을 것입니다.
그리고 열심히 먹이를 나르고, 키워서 뒷산으로 데리고 갔겠지요.
그렇게 힘들게 만든 둥지를 비워 두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여기며 다음 해에도 그 곳에서 새 생명이 잉태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보면 좋은 기억이 고스란히 남겨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년 여름, 밤새 장미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출근 길에 전화를 받던 직원의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연수원 오동나무가 부러졌다고 전합니다.
부랴부랴 도착해 보니 정말 대문 왼편의 큰 오동나무 키대로 넘어져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부러진 자리에 딱따구리 둥지가 있었습니다.
둥지로 약해졌던 부분이 전날 밤, 거센 태풍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졌던 것입니다.
허망한 마음을 애써 달래며 커다랗게 쓰러진 오동나무를 살펴보았지만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나무 끝에 매달려 있던 까치집도 넘어질 때의 충격으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부셔져 있습니다.
그동안 병아리나 토끼 같은 동물들이 다치거나 죽는 일은 보아왔지만, 그 큰 나무가 쓰러질 수 있다는 생각은 상상으로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무들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날 반기리라 여겼기 때문에 충격이 더욱 컸습니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무를 살펴보던 어르신이 “원래 귀한 나무에 앉은 딱따구리는 쫓아 보내야 하는 것인데......” 라며 아쉬워하십니다.
“그럼 진즉 말씀하시지 그러셨느냐?” 라고는 묻지 않아야 했습니다.
주인이 그렇게도 호들갑을 떨며 좋아하는데 쉬 그런 말씀을 하시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저녁이 되면서 충격의 여운이 허탈감으로 바뀌고, 곧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었습니다.
결국은 부러진 둥치로 자그마한 찻상이라도 두어 개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도록 당부를 하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보관했다가 딸 들이 시집갈 때 하나씩 들려 보내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커다란 장롱은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하면 아쉬움이 덜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동나무는 주인의 작은 바람조차 허락할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워낙 오래된 나무라 속이 성글어 목재로는 사용이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사정이 그 지경에 이르고 나니 은근히 딱따구리가 야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하필 우리 대문 옆 오동나무에 둥지를 틀었을까?
그리고는 이내 그런 내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당까지 내려온 딱따구리가 반가워서 사진을 찍고 응원을 보낼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원망을 하는 이 고약한 심보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그야말로 속절없는 심정으로 겨울을 보내고 나니 올봄, 부러진 오동나무 둥치 옆으로 새 가지들이 올라왔습니다.
신기하게도 새로운 가지들은 하늘을 향해 곧게 서 있습니다.
마치 부러진 기둥을 대신 하려는 듯 한 기상입니다.
요즘은 이곳에 들르면 그 가지들을 제일 먼저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부디 잘 자라서, 큰 잎을 달고 예전의 그늘을 다시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큰 대가를 치루고 태어난 아기 딱따구리들도 가끔 마당으로 내려와 주면 좋겠습니다.
장성한 모습이라도 볼 수 있으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야속함이, 아니 애증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은 복잡한 심경이 점차 좋은 기억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토끼와 옹달샘’ 대문 옆에는 두 그루의 오동나무가 서 있습니다.
한그루는 둥치가 부러진 채 여린 가지들을 매달고 있는데, 딱따구리 가족에 대한 향수와 몸서리치도록 두렵고 아팠던 폭풍우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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