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옹달샘 이야기
토끼와 옹달샘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물레방아 도는 내력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는 속담은 세상사 입에 맞는 떡은 없는 법이니, 일장(一長)에 따라붙는 일단(一短)을 수용하고 만족하라는 말로 쓰입니다.
그러나 토끼와 옹달샘 오르다 보면, 어쩌면 이곳이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곳을 매입할 당시는 지금의 별관터를 제외한 모든 곳이 덤불로 덮여있었습니다. 몇 개월 동안 밀림 같던 수풀을 걷어 내고서야 지형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지금의 옹달샘과 물레방아, 그 아래 애기소와 폭포 연못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예전에 물이 흐르던 계곡이었습니다.
이전 주인은 이곳을 과수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금의 옹달샘과 물레방아 사이의 계곡을 막아 도로를 만들었습니다. 애기소와 물레방아 사이의 계곡은 텃밭으로 메웠고, 지금 폭포 연못이 있는 계곡에는 흙을 쌓아 마당을 넓혔습니다.
만약에 이전의 지형이 온전히 보전되었다면 지금의 야외무대에서부터 별관 입구의 폭포 연못까지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가재나 개구리, 꺽지나 버들개와 같은 민물고기들이 살고 있었을 겁니다. 그 계곡 지형 중의 한 곳, 지금의 고전문학방갈로가 있는 자리에 정자를 얹었다면 그야말로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뒤늦게 예전의 지형을 확인해 준 마을 주민들이, 지금이라도 이전 상태로 복원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전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돌축대로 만들어진 야외무대 앞의 큰 도로를 개수(改修)할 자신이 없었고, 그렇게 한다손 쳐도 이전의 지형이 자연스럽게 복원될 것이라는 확신도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계곡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지형에 물레방아, 애기소, 폭포 연못을 만드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예전 계곡물에 대한 집착은 그렇게 '꿩대신 닭'으로 달래고 있지만, 이곳에는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는 아릿한 아쉬움이 하나 더 배여 있습니다. 물레방아와 폭포 연못을 조성할 때 함께 했던 사장님에 대한 그리움이 이젠 아픈 멍울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규모의 조경 업체를 운영하시던 사장님은 저를 도와 물레방아를 설치하고, 폭포 연못을 조성했습니다. 누수가 심해 역할을 못 하고 있던 별관 연못과 군데군데 허물어져 있던 돌담들을 보수하는 일까지도 사장님의 몫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만 의존해 요구가 까다로웠던 장독대와 우물도 내 머릿속의 모습 그대로 만드셨고, 당신이 애지중지 키우시던 모과나무와 배롱나무(백일홍)도 가져다 심었습니다.
힘쓰는 공사를 하기가 어렵다고 여겨질 만큼 체구가 작고, 연세마저 일흔이 넘으신 분이셨지만, 내가 구상하는 공사 구조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어렵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차량이 진입하기 어려운 장소이어서 무거운 물레방아를 설치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염려에도 그보다 더 위험한 곳, 더 큰 물레방아도 여러 개 설치했다며 안심시켰습니다.
“큰 돌들 사이에 설치하기가 평지보다는 어렵겠지만, 한번 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이니 크게 염려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혼자서 그 큰 냉장고를 옮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습니까?”
우여곡절 끝에 어려운 공사를 마치시고는
“제가 된다고 했지요?”
흐뭇한 표정으로 물레방아를 돌리시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습니다
다음 해 여름. 폭포 연못 조성을 마쳤을 때도 개구장이 처럼 연못에 뛰어들어 더위를 식히셨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아주 불행한 소식을 접해야 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불행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맞닥뜨렸을 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사장님이 물레방아와 폭포 연못 공사를 다 마치고 돌아가신 몇 개월 후, 부고가 전해졌습니다. 다른 공사장에서 돌담을 시공하시던 사장님이 포크레인 버킷에 머리를 맞고 운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은 특정한 사건이 생겼을 때, 더욱 뚜렷하고 선명하게 회상됩니다. 그리고 같은 사람에 대한 회상도 나쁜 상황에서는 불행한 기억을 먼저, 강하게 떠올리게 됩니다. 부고를 접하던 순간, 그렇게 긍정적이고 천진난만 하던 사장님의 모습보다 가끔 힘들어 하시던 기억이 먼저 떠올랐던 이유는, 사장님의 마지막 모습이 그렇게 불행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내가 공사비만 그리 많이 떼이지 않았어도 지금까지 이 일을 안 해도 되는데……저놈 장가보내고 나면 접을 겁니다. 저놈이 지 애비를 도운다고 따라 다니고는 있는데……지 애비가 하는 일 배워서 무슨 늘푼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장가보내면 일을 그만두게 하겠다던 사장님의 아들은 안타깝게 사장님이 세상을 떠난 지 1년 후에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물려주지 않겠다던 일을 계속하면서 토끼와 옹달샘의 애기소(작은 풀장)를 만들었습니다. 이전에 가끔 오셔서 식사를 챙겨주던 사모님이, 이제는 아드님의 일을 돕고 계십니다.
사장님.
8월이 되면서 별관 마당의 배롱나무가 많은 꽃송이를 피웠습니다. 사장님이 심으실 때보다 세 배나 많아진 꽃송이들이 토끼와 옹달샘의 8월을 환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본관 마당의 모과나무에도 어른 주먹보다 더 큰 모과가 익고 있습니다. 오늘도 폭포 연못은 연일 시원스런 물줄기를 쏟아내고, 아드님이 만든 애기소에서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몇 번을 고쳐 만드신 장독대에서는 올해도 된장, 고추장, 간장이 깊은 맛으로 숙성되고 우물과 펌프도 처음 모습 그대로 잘 있습니다. 사장님이 그렇게 좋아하셨던 물레방아도 여전히 잘 돌아갑니다. 물레방아를 받치고 있는 큰 바위에는 푸른 이끼가 사장님이 가신 세월만큼 짙어졌습니다. 올해는 물레방아 옆 잔디밭에 자그마한 대나무 정자를 설치했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이 그 곳에 앉아, 사장님의 숨결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장님.
그 때도 감사했고, 지금도 고맙고, 앞으로도 변함 없이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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